제목: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 II
본문: 로마서 10장 1-21절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은 예정(긍휼의 그릇: 긍휼히 여기심과 진노의 그릇: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과 믿음에 연이어 있는 은혜를 포함합니다. 2천년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베드로가 3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설교를 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그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주님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왜 믿음과 은혜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육신인 인생의 존재가 그 수고와 노력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를 알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생들을 이처럼 죄인으로 만든 원죄가 무엇인지 알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은혜는 인생의 주어진 상태에서 무엇이 더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인생에게 있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구나, 전혀 하나님 앞에 선하지 않구나, 그것이 온전히 포기되어져야 하는구나”를 철저히 고백할 때, 즉 자기를 철저히 부인할 때 자신을 전혀 의지하지 않을 때, 자신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믿음의 눈이 열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의가 임합니다. 마치 바람이 부는 것처럼 그 은혜가 내 영혼에 불어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롬10:3)의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의 대조는 (롬9:32)에 있는 “믿음을 의지하는 것”과 “행위를 의지하는 것”의 대조와 같은 의미입니다. (롬9:30)에서도 “믿음에서 난 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반대는 행위에서 난 의, 즉 자기의 입니다.

지난 주에 보았던 긍휼의 그릇은 믿음을 의지하고 진노의 그릇들은 행위를 의지합니다.

믿음을 의지하는 것은 삶의 기준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행위를 의지하는 것은 삶의 기준이 이 땅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에게는, 인생에게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길 수 있을 만큼 선한 것이, 그런 능이 전혀 없음을 보게 하십니다.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게 하십니다. 이 땅의 생명이 아니라, 그것에는 조금도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옛자아의 장사됨)에서 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새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온전히 사셨고 대속을 통하여 인생들이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율법의 의를 완성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연합의 원리로 이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이 죽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거기서 성령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거기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요15:8).

이 십자가의 도는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어떠함을 보게 합니다. 이것은 성도의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으로 귀결시킵니다.

성도의 온 삶과 온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이 편만해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속량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모든 인생의 영혼과 생명의 처음과 끝의 (모든 순간의) 생살여탈권을 주장하시는 권능임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인생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다른 인생을 사랑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은 감동적이며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힘에 부치게 최선을 다해 살신성인하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그러나 한 인생의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로입니다.

그것에 비해서 그리스도의 공로는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하나님의 공로는 온 우주 만물과 모든 영혼에 절대적인 간섭과 주권을 행사하시는 권능이기에 매 순간 하나님이 모든 세상 역사를 일일이 주관하시고 모든 인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관하시는 것을 성도는 인정하게 됩니다. 만물을 매일 신실하게 붙드시는 하나님은 천하보다 귀한 인생을 어떻게 대하실 것인지 분명합니다. (욥7: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치 하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목적과 계획을 따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운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매 순간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하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늘 우리에게 하루도 예외 없이 손을 벌리고 계십니다 (롬10:21). 그렇기 때문에 최후심판대에서 아무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인생들의 눈이 죄악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롬10:21)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험한 인생을 살아가다가 은총을 받은 심령에 인생의 어떠함이 보이고 들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그것이 해석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함께 해주시는 그 은혜를 받은 인생들이 성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은 온 우주와 세상에 지금도 편만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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