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구원의 확신 II
본문: 로마서 5장 1-11절

1. 성도는 고난을 통해 구원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고후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에는, 이 땅의 것에는 온전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자체로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은 모두 예외 없이 율법의 행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믿음으로 하늘 아버지 집에만 있는 온전한 의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을 열어서 진정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나라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때로는 그 자녀에게 보이는 세계의 문을 다 닫으시기도 하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보이는 것을 따라서 살게 가르치는 이 땅의 임금의 방식을 떠나서 보이지 않는 곳의 왕의 방식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읽은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량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을 확신하는 중요한 증거는 환난입니다. 고난입니다.
왜 5장에서 사도는 구원의 확신을 가르치면서 하나님과의 화평을 말하고 동시에 고난을 언급할까요? 그냥 추가적으로 끼워 넣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히 구원의 증거로서 따라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증거해줍니다 (행14:22), (딤후1:8), (롬8:17), (요16:33), (빌1:29), (벧전4:12,13). 그 외에도 다 나열하려면 지면이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고난은 성도에게 구원을 확신시켜주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주권적 섭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부터가 성령님에 이끌려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마4:1).
주님의 의로만 고백하고 살아가도록, 그렇게 승리하도록, “보이는 것 중에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것이 없구나”를 체득하고 초연해지도록 그렇게 자신과 세상에서 자유함을 누리도록 만드십니다. 그래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세상은 율법의 행위의 흔적들인 이 땅의 업적과 성취에 그리고 성공과 실패 등으로 선악의 잣대를 갖다 댑니다. 그러나 성도는 마음이 부패한 인생들이 그것을 통해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부패한 인생들의 마음 위에 서 있는 성취와 업적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그것이 회칠한 무덤처럼 겉만 화려하게 치장한 것임을 알고 고백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감격으로 하나님 앞에 여전히 무익함을 고백하며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고난을 통하여 소제로 드리는 고운 곡식가루처럼 그 옛자아를 깨트리고 부셔가셨습니다. 자녀들을 믿음의 체질로 만드시고 믿음의 근육을 키워주셨습니다. 주님을 닮아가게 만드셨습니다. 맹수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소나 양처럼 순한 동물만 제물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 죄인들의 독기를 다 뽑으십니다. 맹수의 손톱과 발톱 이빨을 뽑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사11:6-8).
거기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함을, 권능을, 십자가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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