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도의 기도 (느혜미야 1장 6-11절)
본문: 느헤미야 1장 6-11절
1. 성도는 가족과 교회의 죄를 자신의 죄인마냥 탄식하며 자복합니다
애통해 하는 하나님의 성도는 가족과 교회식구들을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느1:6)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그런데 우리의 심령은 너무나 둔감하고 무뎌져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이처럼 자신과 다른 이를 동일시하는 마음은 사람의 힘으로는 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만 됩니다. 매우 중요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주님을 따라 광야의 길을 가는 자에게서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바른 중보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예레미야에게, 다니엘에게, 느헤미야에게 무너진 성읍과 오랜 세월 포로생활을 하는 자신과 동포의 처지를 바라보는 것은 그 마음을 너무나 상하고 깨어지게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우리의 심령을 그렇게 다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2.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약속을 의지하는데서 나오게 됩니다. (느1: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예수님 오시기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복음을) 통과하여 보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도무지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 지내지 않은 때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예배자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바알로 대표되는 우상숭배, 즉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고집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주인의 자리를 내려놓기를 거부합니다.
거기서는 새생명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죄인들의 비참한 실존의 몸부림을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킬 뿐입니다. 겉으로는 근엄하고 화려하게 보이기도 하기에 속아넘어갑니다.
(암5: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3. 기도하는 성도는 가정과 교회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습니다
이렇게 빚어진 하나님의 성도는 하나님의 손에 쓰임을 받게 됩니다. (느1:11)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마틴 루터는 처음부터 거창한 개혁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진행되어졌을 뿐입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있었지만 선제후 프레드릭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루터는 젊은 시절 수도원에 들어갔고 영혼의 안식을 얻기 위한 진솔하고 처절한 몸부림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렇게 그의 광야의 삶이 주님의 손에 쓰임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