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상을 능가하는 성도
본문: 느헤미야 2장 11-20절
1. 십자가로 준비된 하나님의 성도는 자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깨워 일으킵니다
이전의 예루살렘과 지금의 예루살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한 명의 하나님의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옛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고 하나님만 완전히 다스리는 참생명으로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된 계기는 어디서부터 비롯됩니까? 그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처절히 애통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인생이 하나님 앞에 무한한 죄인이며 티끌 같고 벌레 같음을 고백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느헤미야는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느2:18)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이렇게 골리앗처럼 두려움을 주던, 이전의 나의 마음을 지배하던 악하고 더러운 영들과 귀신들을 제압하고 성전을 다시 회복한 자가 나왔을 때, 그 골리앗을 넘어뜨린 자가 나왔을 때, 숨어있고 자고 있고 위축되어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얻고 일어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이 수행하는 하나님 일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은 유혹과 조롱과 위협을 통해 방해합니다
(느2: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세상의 위협과 조롱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성령께서 그 심령에 보증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3. 성도가 교회를 회복하는 일에 세상의 것은 조금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느2: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죽은 자와 같은 100세의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을 얻는 것은 오직 하늘로부터의 은혜임을 알게 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마5장) 인간에게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선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지만 인간의 것들이 섞인 불의한 제사입니다. (느2:19)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그들의 정체는 세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시절 거짓선지자의 가르침에 속한 유대인들의 신앙도 인간들의 율법의 행위에 스스로 속아넘어갔습니다. 그들도 불의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예수님의 말씀에 비웃습니다 (눅16:14). 그들이 그렇게 율법에 열심히 치중한 중심은 세상에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에 가리움을 받지 않는 것 중에서 하나님께 의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존경과 찬사를 받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는 주님의 공로의 영광에 인간의 영광이 자리를 차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